TECH-EMOTIONS_예술사회학박사, 미술비평 / 윤규홍 Yoon Gyu-hong, Art Critic

예술이 함께 품은 기술과 감성

금세기 초에 접어들어 문화 우세종으로 자리를 굳힌 마블 코믹스 원작의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을 돕는 인공지능 인격체가 등장한다. 이들 대부분은 이공 계열의 영웅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이 만든 것으로, 자비스, 프라이데이, 그리고 그가 스파이더맨에게 따라 붙인 카렌도 있다. 여느 공상과학물에서 그려지는 뻔한 설정처럼, 이들 A.I.도 논리적인 연산체계가 냉랭히 작동한다. 하지만 인격화된 그 인공지능들은 개체와 개체 간의 관계 패턴을 학습하며 진화한다. 즉 그것들은 사회화(socialization)를 통해 감성과 비슷한 프로세싱을 수행한다. <스파이더맨>연작에서 카렌은 주인공 피터 파커에게 연애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어벤저스>시리즈에서는 아예 자비스가 육신을 얻어 비전이라는 히어로로 거듭나기도 한다. 인조인간에 가까운 비전은 만화 원작에서 감정을 주체 못해 사건을 일으키곤 하는 막시모프/스칼렛 와치와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 한다.

기술에도 감성이 존재할 여지가 있나?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대부분 봤겠지만, 오래 전에 나왔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을 할(HAL 9000)이라는 인공지능이 통제한다. 영화에서 빌런 격인 역에 할은 자기가 작동을 멈추는 것을 두려워 한 승무원들의 목숨을 빼앗는다. 컴퓨터에게 턴 오프는 일종의 죽음이므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인간들과 사투를 벌인 셈이다. 위협을 느끼고, 상대를 해치는 행동에는 두려움이나 분노가 깔려있다. 할에게도 감정 체계가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이 교활한 A.I.는 심미적 기준도 가졌는지 미술 비평까지 할 정도였다. 모르긴 몰라도 그 기계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보다는 더 나은 평론을 산출(output)했을 건 분명하다. 어쨌든 영화 관객들은 붉은 램프의 점멸을 통해 할이 가지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예술 이야기를 하자. 우리가 보는 전시는 <TECH-EMOTIONS>전이다. 기술 문명이 품은 미적 상상력에 관한 전시다. 전시를 큐레이팅한 기획자는 <테크-이모션즈>전이 최신 기술에 기대어 작동하는 작품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즐기게끔 하려는 목적에서 일을 시작했다. 사실 테크놀로지와 엮인 예술가의 감성은 현대 미술에서 숱한 볼거리와 토론거리가 되어 왔다. 이 전시에서도 그 목표는 이룬 것 같다. 나는 전시를 준비한 스태프들의 노고에는 박수를 치지만, 그 목표의 방향까지 전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다. 차라리 ‘테크놀로지’와 ‘이모션’이란 두 키워드에 ‘무빙 아트’를 끼웠다면 더 친절한 테두리 긋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주제의 미술 전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다. 여기에는 비교적 많은 절차와 비용이 쓰인다. 아울러 이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 가운데 한 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은 전기를 필요로 한다. 전기 에너지가 빛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로 바뀔 때 비로소 이 작품의 면모는 드러난다.

그런데 시각예술에서 벌어지는 이 에너지 변환 과정이 하나의 스펙터클로 얼마만큼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기전자 기술이 이끌어낸 결과는 예컨대 테슬라나 BMW i8같은 자동차에, 할과 자비스의 실현체인 인공지능 가전기기로 나타났다. 미술이 이런 현실 속의 매혹과 맞설 수 있을까? 있다면 그 가능성은 그저 대상을 보고 즐기는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작품을 통해 사유하는 동시대 예술의 힘에서 시작될 것이다. 나는 이를테면 아트(art)가 ars와 techne의 결합체인 아레테(arete)에 뿌리를 둔 단어라는 식의 설명으로 지면을 소비하기는 싫다. 대신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 전시는 과학과 기술이 예술이나 교육에 적용되며 드러내는 이야깃거리들, 그러니까 환경문제, 포스트휴먼, 감시사회, 기술과 부의 자본편중, 가상현실, 인류세, 언캐니밸리처럼 금방 생각하더라도 숱하게 떠오르는 의제가 각 작품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하나하나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어쩌면 필자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따로 설명하는 강의나 글을 통해 공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전시는 애당초 현대 사회와 현대 예술의 거대한 담론을 조망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지 않았고, 또 가져서도 안 된다고 본다. <테크-이모션즈>전은 심각한 동시에 매혹적인 인식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입문 과정과도 같다.

거창하고 혁신적인 뭔가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이 전시는 보는 재미가 있다. 콘템포러리 아트에 훈련이 된 관객들의 눈에는 여기에 속한 작품들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만만함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나만 알고 있을 것 같았던 노래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에서 흘러나올 때 드는 느낌 같은 것 말이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글이든 그것들을 어디서 접하고 또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따라 맥락은 달라진다. 일단 여기에 모인 작가 군이 좋다. STUDIO 1750, 하이브, 로컬포스트, 권남득과 권순자, 그리고 강대영 작가가 그들이다.

먼저, 아트센터 건물의 바깥에 설치된 작품은 STUDIO 1750의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김영현과 손진희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이 팀의 작업을 잘 아는 나에게 이 인스톨레이션이 제목과 달리 예상에서 벗어난 신작이었다. STUDIO 1750은 혼종(하이브리드)을 곧잘 다뤄오던 듀오다. 그 가상의 생명체들은 풍선처럼 공기로 가득 차있고 때로는 움직이기도 한다. 이 작업 방식은 한 개체에 숨결을 불어넣어 살아있게끔 하는(animated) 과정과 흡사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물이 아니라 바다다. 사실 파도치며 넘실대는 바다는 생물의 터전이기에 앞서 그 자체로 생명체와 비슷한 면이 많다. 어울아트센터의 야외공원 분수 옆에 세워진 이 작품은 진짜로 존재하는 물과 진짜를 본 딴 물의 조합이다. 이 물의 향연은 일단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STUDIO 1750의 작품은 뜨거운 여름을 피해가는 피서지 역할을 이미 하고 있다. 어린 아이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왔을 법한 천진난만함은 사실 현실 속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예상할 수 있었던 일>도 그 점을 살린다. 파도 속에는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폐품들이 숨겨져 있다. 그들이 바다 환경 문제를 르포타주처럼 보여줬더라면 관객들은 STUDIO 1750이 웅변하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이브는 본 전시장 앞으로 통하는 로비에 작품을 공개했다. 현재 한창민 작가가 팀의 이름으로 홀로 활동하고 있는 하이브의 작품은 <콰르텟>이다. 콰르텟이라는 낱말처럼 화면은 사등분되어 있고, 실시간으로 비친 영상은 10초 전에 카메라에 찍힌 모습이 나타난다. 이미지는 마치 영화 발명 초기 단계에 발명된 연속촬영 기기들처럼 시차를 두고 화면에 잡힌다.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관객 참여자는 과거라는 물리적 시간 속에 있던 자신을 관찰하게 된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시차적 관점(parallax view)은 잘 알려진 개념이다. 지젝은 하나의 대상도 보는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는데, 보는 위치나 시간의 틈이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관찰자의 인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실시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관객이 보는 자기 모습은 현재가 아닌 과거 모습이다. 그때 이 관객은 10초라는 시간만큼 늙었으며, 배고파졌을 것이다. 10초 전의 상태보다 10초 후의 자신이 좀 더 똑똑해졌다면 그것은 이러한 자기 존재에 대한 깨달음 때문일 것이다. 하이브의 작품을 보고 든 내 생각은 세 가지인데, 하나는 우아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낼 수 있는) 미적 구성력에 관한 경의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 기술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먼저 개발된 것이 아닐까라는 궁금함이다. 나는 여기에 대해 잘 모른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콰르텟>의 구성에 관한 거다. 실시간 반영 태를 위한 프로젝션과 더불어, 맞은편에 걸린 TV형 모니터에는 마임니스트가 보여주는 퍼포먼스 영상이 들어있다. 말하자면 모니터 버전은 숙달된 조교의 시범이며, 프로젝션 버전은 실습생들의 체험이다. 두 가지 형식 속에 담긴 내용을 서로 바꿔 보여주더라도 재미있을 것 같다.

로컬포스트는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하는 다원 예술의 장에서 인지도가 쌓인 그룹이다. 이들은 여러 명이 개인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로컬포스트의 간판 아래에 뭉쳐 작품을 창작하기도 한다. 또 로컬포스트는 작가로서 작업하고 전시하는 일과 더불어 기획자로서 이벤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느슨한 조직 같은데 또 어떤 면은 결속력 있어 보이는 그 속사정을 나로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번 전시에 로컬포스트는 손영득과 오정향 두 작가가 팀을 이루었다.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A Walk To>와 <유령의 커브>다. 각각 세 대의 러닝머신 앞에 스크린이 걸린 식으로 구성된 <A Walk To>는 관객이 운동 기구에 올라 걷거나 달리면 그 속도에 비례해서 애니메이션 속 가상의 공간이 펼쳐진다. <유령의 커브>는 빠르기가 일정한데, 대신에 배를 움직이는 키 모양의 레버를 돌리면 참여자 관객이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 그 앞에 구현되는 이미지는 대구 동인동 길로 보인다. 한 작품은 가상의 공간과 속력에 관한 고찰이고, 다른 작품은 실재 공간과 진로에 대한 제시다. 이들의 작업을 두고 나는 인문지리학의 예술적 수용이라고 정의내리고 싶은데, 그들의 생각은 나와 다를 것 같다. 훨씬 복잡하고 깊을테니까.

권남득과 권순자 두 작가는 키네틱 아트로 묶을 수 있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팀 이름만 안 붙였을 뿐이지 호흡을 맞춘 지 오래된 두 명의 권작가는 구동 장치와 축과 강판과 전자석과 램프 같은 부품류를 조립해서 작품을 완성한다. 3D프린터기를 통해 깎아낸 <미키 마우스>연작을 뺀 나머지 작품들이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은 당연히 흥미롭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이 세상은 신기하고 볼만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관객들은 이들의 작품 앞에서 잠깐은 흥미를 보이더라도 이내 지루함을 느낄지 모른다. 작가들이 이런 사실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분명한 점은, 그들의 작품은 이런 지루함을 역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번 따져보자. 그렇게 작동하는 조립체는 그래서 어쩌라고, -so what?- 뭘 위해 기능하나? 작품의 구동 원리가 중심이라기보다 여기에선 기계가 느리게 움직이며 보여주는 멋을 볼 수 있다. 난 그걸 멋이라 하는데 작가들은 기계적 감성으로 부른다. 마치 신이 세계를 창조한 것처럼, 작가는 자신들의 영역 속에서 원래 쓰임새가 달랐던 부품 조각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오직 작품 속에서 전능한 예술가는 절대자처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존재의 지루함을 이겨내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실존철학의 관점에서 새로 써내려간 종교와 예술의 원리와 흡사하다.

끝으로 조각가 강대영.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업을 모기와 함께 떠올린다. 그는 오래 전부터 금속 재료를 자르고 휘고 다듬어서 모기 형상을 만들어 왔다. 실재 크기의 작은 것들부터 진짜 존재한다고 상상하면 끔찍한 스케일까지 작가가 완성한 모기 조각은 다양하다. 모기가 앵앵거리며 내는 소리까지 재현한 설치작업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했다. 소재를 전혀 달리한 이번 신작에서도 그런 익살맞음을 발견할 수 있다. <움직임-소리>라는 제목이 붙은 신작은 양은 냄비를 오브제로 삼는다. 330개의 냄비들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 가운데 삼분의 일 가량의 냄비 속에는 모터가 장착되어 있고, 센서가 인기척을 감지하면 냄비 뚜껑이 달그락거리며 소란이 벌어진다. 그 광경은 상상만 해도 웃기지 않나? 낱낱의 냄비는 사회 속의 개인으로 비유해도 무리가 없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고, 그것들이 내는 파열음도 세기가 다르고, 침묵하는 것들이 더 많다. 작가도 아직 스스로 완전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그런 난감함이 작품을 더 살린다. 나는 작가가 왜 모기에서 냄비로 대상을 바꾸었는지에 관한 물음보다, 직접 제작한 방식으로부터 사서 갖다놓은 기성품으로 방식을 왜 틀었는지에 관해서 주목하고 싶다. 잘 알려진 대로, 100년도 더 지난 옛날에 마르셀 뒤샹은 변기를 미술관에 가져다 뒀다. 나는 그 작업 동기를 예술가가 사회적 승인을 받으면 그가 뭘 하든 예술이 된다는 사회학의 일반적 정의를 해석해왔다. 그런데 사회학보다 철학은 덜 명확하긴 한데, 대신에 더 섬세한 면이 있다. 뭔가 하면, 뒤샹이 가져다 놓은 변기 제품은 똑같은 물건임에도 저마다 미세한 차이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뒤샹이 내어놓은 앵프라맹스(inframince) 개념은 우리가 인식할 순 없고 그냥 상상 속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차이를 뜻한다. 강대영의 작품 또한 그런 식으로 풀어 설명이 가능하다.

<TECH-EMOTIONS>전은 여러 모로 의미를 가지는 기획이다. 그 중에서 전시가 펼쳐지는 대구 북구에는 대구종합유통단지가 있으며, 그곳으로부터 여러 재료와 장비들을 수급하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은 예컨대 모터와 센서와 컴퓨터와 영상 장비가 중심이 된 중범위 수준의 기술이지 하이테크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예술가들은 좀 더 높은 차원을 바라본다. 이 전시가 의도한 “작품과 관람자 간의 쌍방향 소통”이 완성되려면 미술가들이 열어놓은 놀이판에 관객들이 접근한 흔적이 다시 되먹임(feedback) 되어야 한다. 이게 말처럼 쉽진 않을 것이다. 여기에 모인 다섯 팀의 아티스트가 보여주려는 세계상은 결코 완결될 수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놀이와 예술의 경계 허물기, 상황에 따른 가변적인 해석,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배치는 본질적으로 미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의도적인 미완성 작업, 즉 논 피니토(non finito)일 수도 있다. STUDIO 1750, 하이브, 로컬포스트, 같은 성씨의 커플.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가진 개인이지만 동시에, 모든 면을 애써 드러내지 않은 채 논 피니토를 실천하는 초현실적 주체이기도 하다.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디렉터/예술사회학)

Tech-Emotions (LOCAL POST) By Yoon Gyu-hong, Art Critic

Local-Post is a high-profile artist group that works in the arena of plural art, especially media art. Several artists joined together under the banner of Local-Post while working as individual artists.

Its members at times created events while working or exhibiting their pieces as the artist.

At a glance it can either seem like a loose organization or a tight one with a strong bond.

I myself do not know the inside story in detail.

Local-Post seems to have the ability to always be working in the art scene.

First, Local-Post relies on a candid philosophy that is similar to the basic principle of founding a corporation to carry out its projects.

Second, it has gained lots of field experience. It is not afraid to do paperwork or carry out educational programs. (That being said, there is only the absence of fear. I’m sure nobody actually likes such red tape.)

Third, it has independent technical capabilities. This third point may be similar to the second. No media artist is adept at the technology they adopt. If there is something you do not know or are accustomed to, you have to outsource. It would be a great strength if you could solve a technical problem by yourself.

Two artists, Son Young-Deuk and Oh Jung-Hyang, have teamed up for this exhibition. Their works include A Walk to and Ghost Curves.

A Walk to consists of a giant screen and three running machines. When a viewer walks or runs on the running machine, an imaginary space in an animation unfurls in proportion to his or her speed.

Unlike this work, Ghost Curves depends on the principle that a viewer can choose the route they take as they turn the helm while the speed remains constant. The images incarnated by this action are similar to the streets in Dongin-dong, Daegu. In other words, the former work is a consideration of imaginary space and speed whilst the latter is a presentation of an actual space and route. I myself would refer to it as “an artistic embrace of human geography” but they may have a different take on it. Their view is much more complicated and profound than mine.

로컬포스트는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하는 다원 예술의 장에서 인지도가 쌓인 그룹입니다.

이들은 여러 명이 개인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로컬포스트의 간판 아래에 뭉쳐 작품을 창작하기도 합니다.

또 로컬포스트는 작가로서 작업하고 전시하는 일과 함께 기획자로서 이벤트를 만들어내기도 하더군요.

일견 느슨한 조직 같은데 또 어떤 면은 결속을 다지기도 하고요. 저는 그 속사정을 자세히 알 진 못합니다.

로컬포스트는 미술계에서 꾸준히 일을 해 나가기에 여러 강점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첫째로 뭐랄까 기업으로 치면 창사이념에 해당하는 그들 예술가그룹의 기치가 정직합니다.

둘째로 현장 경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페이퍼워크나 교육프로그램 진행 같은 일에 두려움이 없는 것 같습니다.(두려움이 없을 뿐이지, 그런 번잡한 절차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말입니다.)

세번째 강점 또한 두번째의 동어반복일 수 있는데, 독자적인 기술력입니다. 미디어아트 작업을 보여주는 모든 작가가 기술에 능통하지는 않습니다. 모르거나 익숙치 않은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외주에 맡기겠죠. 왠만한 기술적 부분을 자체적으로 해치울 수 있는 건 큰 장점입니다.

이번 전시에 로컬포스트는 손영득과 오정향 두 작가가 단출히 팀을 이룹니다.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A Walk To>와 <유령의 커브>가 그것입니다. 각각 세 대의 러닝머신 앞에 투사되는 스크린으로 구성된 <A Walk To>는 관객이 운동 기구에 올라 걷거나 달리면 그 속도에 비례해서 애니메이션 속 가상의 공간이 새롭게 펼쳐지고요.

<A Walk To>_인터렉티브 영상설치_ 가변크기_ 오정향+손영득 _ 2019

이와 달리 <유령의 커브>는 빠르기는 일정한데, 대신 선장이 잡은 키를 좌우로 돌리면 참여자 관객이 경로를 선택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그 앞에 구현되는 이미지는 대구 동인동 길 같네요. 말하자면 한 작품은 가상의 공간과 속력에 관한 고찰이고, 다른 작품은 실재 공간과 진로에 대한 제시입니다.

<유령의 커브>_인터렉티브 영상설치 _ 가변크기_로컬 포스트 _ 2016

인문지리학의 예술적 수용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은데, 그들의 생각은 저와 다를 겁니다. 훨씬 복잡하고 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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