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트(Kabarett)의 소외성과 치유적 가능성1    

- 브레히트(B. Brecht)와 헤겔(G. W. F. Hegel)을 중심으로 -                                           

​카바레티스트 김주권

1. 서론


오직 부정적인 웃음만을 알고 있는 순수한 풍자 작가는 자기 자신을 조소당하는 현상 외부에 위치시킴으로써, 자신을 그 현상과 대비시킨다. - 미하일 바흐친2)
The satirist whose laughter is negative places himself above the object of his mockery, he is opposed to it. - Bakhtin, M. M. (Mikhail Mikhallovich)3)

 

‘부정’이라는 단어는 변화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게는 거부감을 주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안주를 원하는 사람이나 순응과 복종을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이 단어는 금기의 단어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주체는 자신에 대한 ‘부정’ 없이는 새로운 발전이 가능하지 않다. 부정은 주체의 자기 성숙에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 부정은 자기를 폐기하는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자기 성장의 필수적인 계기이다. 사실
주체가 자기 자신을 의식하려고 할 때, 이미 거기에는 의식되는 자기와 의식하는 자기로 분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분화에는 필히 한계를 지닌 주어진 자기와 자유를 실현하려는 자기 사이의 분열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주체는 이러한 분화에서 발생하는 자기 분열을 넘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체 자신이 자신을 부정하는 운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주체의 자기 부정은 자기 분열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참된 자기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계기가 된다.
헤겔은 “부정성”을 “단지 존재에 규정을 가하는 것(Bestimmtheit nur am Sein)”4)이라고 정의한다. 사실 주체가 규정 활동을 수행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인식할 수없으며 또한 소유할 수 없다. 따라서 규정 활동은 주체의 자기 성장에 필히 동반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규정 활동을 수행하는 부정성은 모든 존재의 자기실현의계기이다. 개인의 역사든, 사회의 역사이든, 국가와 인류의 역사이든 모든 역사의 발
은 이런 부정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부정성’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고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표현이며 무기이다. 헤겔은 이러한 부정의 운동을 주체의 자기 소외를 중심으로 파악하며, 이러한 자기 소외야말로 진정한 부정에 이르는 길임을 제시한다5). 이 점에 착안하여 본 논문은 카바레트와 브레히트6)의 공연 표현 방법으로 소개된 ‘소격’(疏隔, Verfremdung)에서 일어나는 부정성의 운동에 주목
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Verfremdung이라는 단어가 국내의 번역서들에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어혼란스럽다. 서경하가 번역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즐거운 비판』에서는 이 단어가 ‘비동화’로 번역되어 있으며7), 송윤엽이 번역한 브레히트의 또 다른 저작 『브레히트의연극이론』에서는 ‘생소화’라고 번역되어 있다.8) 또한 강수정이 번역한 리사 아피냐네시의 『카바레-새로운 예술 공간의 탄생』에서는 ‘소격’으로 번역되어 있다.9) 이처럼 독문학계와 연극계에서는 Verfremdung이 서로 번역되고 있다. 사실 이 표현은 헤겔 소외 개념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브레히트의 연극미학 - 변증법적 연극』에서 이재진은 브레히트의 소격(Verfremdung)이 헤겔의 소외(Entfremdung)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10)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편의상 본 논문에서는 이상에서 언급된 비동화, 생소화, 소격 등의 용어를 헤겔의 ‘소외’와 연관을 지어 다루고자 하며, 이런 맥락에서 카바레트의 Verfremdung을 ‘소외성’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카바레트 예술과 브레히트의 연극에 헤겔의 변증법적 부정성의 정신이 담겨 있음을 찾아보려고 하며, 이를 통해 그의 부정성이 철학치료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려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먼저 카바레트에 대해서 살펴보려고하며, 이어서 카바레트와 브레히트의 연극이론에서 드러나는 ‘소외성’의 의미와 효과를 살펴보려고 한다. 나아가 이 글은 카바레트에 나타나는 부정성, 즉 ‘소외성’이 철
학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려고 한다.

2. 카바레트의 역사와 소외성


카바레트는 아직까지 한국에서 생소한 예술 장르이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 주둔한 미군들에 의해 소개된 댄스 클럽(Dance Club) 개념의 카바레(Cabaret)가1970년대와 80년대에 불륜의 온상으로 전개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이 카바레에 대한 왜곡된 선입견이11)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알려진 카바레와 정통 프랑스 카바레(Cabaret), 그리고 독일식 카바레인 카바레트(Kabarett)는 다르다. 독일식 카바레트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언급은 카바레의 역사를 정리한 리사 아피냐네시(L. Appignanesi)의 『카바레 새로운 예술공간의 탄생』에 잘 나타나 있다12) 카바레(Cabaret)라는 말은 ‘포도주 창고’ 또는 ‘선술집’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되었으며, 그런 카바레는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 1431~1463)13)이 살았던15세기 중반에 이미 공연장으로 활용되었다라고 알려져 있다. 더 근원적으로 카바레의 원류를 찾아들어가 보면 중세시대의 가톨릭 전례에 따른 카니발이 카바레적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4) 카니발은 정해진 일정 축제동안 일반 평민들이나 농부들이 자신들의 해학을 즐기던 장이었다. 이 가운데 몇 세기 뒤에 근대적 도시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예술 카바레의 두 가지 형식, 즉 하나는 예술가들끼리 작품을 선보이고 즉흥 공연을 하는 회합 장소로서 카바레,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규모는 작지만 높은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레뷔(Revue)15)의 공연장으로서의16) 카바레이다.

이러한 장소적 변화는 카니발 축제 속에 담겨진 해학의 장소로서의 장터라는 열린공간에서 20세기의 고정되고 축소화된 장소로 변화되었다.17) 이후 축제에서만 나타나던 카니발이 정식 공연형식으로 자리를 잡은 카바레로 발전하게 된다. 이 카바레는 19세기 말에 프랑스에서 싹텄지만,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까지 독일에서 정치와 문화의 독특한 풍자 매체로 꽃피게 되며 아방가르드나 예술 카바레트로 발전하게 된
다.18) 그리고 이들 카바레트는 하나같이 볼거리라는 관점에서 무대공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담배 연기와 이야기’19)라는 몽롱한 자율성을 제공했다. 나아가 카바레 (선술집)라는 장소의 특성상 음식을 먹거나 마실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카바레트는 모더니즘이 대두되었던 20세기 초의 시대상황에 맞추어 젊은 정신, 즉 도전의식을 바탕으로 했으며 생기발랄한 가운데 ‘심야의 도플갱어, 웃음 만발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도시의 배꼽’이라는 정신을 기반으로 한 반골정신으로 창의적 공연을 만들어 갔다.20) 이후 20세기 초에 카바레트는 새로운 예술을위한 도전의 장으로 자리를 잡고 생명력을 이어갔다.20세기 초의 카바레트는 아방가르드를 주도하였으며,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실험 무대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이 수행한 카바레트는 당대의 여러 사건을 다루면서 도덕, 정치, 그리고 문화를 비판과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풍자와 해학의 무대로 각광을 받았다. 최고의 카바레트는 두 가지 특징, 즉 실험정신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표현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졌다.
카바레트는 연극(정극)과 유흥으로서의 쇼(Show)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어 가면서 그전까지 일반적으로 인식되던 예술과 다른 모습으로 카바레트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 나아갔다. 이러한 가운데 무대와 장치, 공연 내용에 즉흥성21)을 가미한 공연예술인 카바레트는 재치가 반짝이는 저항 정신과 반골 기질, 혁신적인 태도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시대 상황에 따라 초점을 조정했다. 리사 아피냐네시는 이러한 ‘반골 기
질’이 곧 카바레의 본질이라고 보고 있다.22)

 카바레트(코메디가 아니다. 그리고 독일어로 발음해야한다. 카바레가 아니다. 정치 카바레티스트들이  매우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는 풍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듯이,

 여기에는? 정치 모티브를 비평하는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23)

리사가 언급한 실험정신, 풍자, 저항, 반골기질, 혁신적 태도는 독일식 카바레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에는 헤겔의 부정성을 기반으로 한 ‘소외’가 철학적 기초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카바레트는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한 철학적 이로니(Ironie)24), 즉 역설을 중심에 두고 카바레트 특유의 근본정신이자 표현방식인 ‘소외성’을 드러내고 있다.25) 이 독일식 카바레트는 1901년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온 에른스트 폰 볼초겐(Ernst vonWolzogen)이 베를린의 알렉산더 거리 4번지(Alexanderstraße 4)에 자리를 잡으면서 생겨났다.
독일의 첫 번째 카바레트 극장의 이름은 위버브레틀(Überbrettl), 즉 <빨래판>으로 명명 되었는데 그 이름 속에는 세상의 부조리를 공연으로 씻어내는 ‘빨래판’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더불어 그 시기의 독일은 베를린뿐만 아니라 뮌헨, 그리고 라이프치히에서도 독일식 카바레트를 시도하고 있었다. 이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했던 카바레트는 기존의 예술적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도전의식26)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도전의식은 그들이 자각을 했든 하지않았든 뒤에 비교 검토하게 되는 헤겔 변증법의 부정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
독일 카바레트에서 나타난 부정성, 즉 소외성은 20세기 초 마리네티(Filippo TommasoMarinetti)27)가 주도한 이탈리아의 미래파(Futurismus)나 스위스 취리히의 카바레트 극장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28)’의 아방가르드(Avant-Garde)29)로 진화되었다. 이런 발전들가운데 그 중심에는 항상 행동(Akt), 즉 관객(Zuschauer)과의 소외성(Verfremdung)을 표현방식으로 하는 극예술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외성(Verfremdung)이 지향하는 ‘부정’을 통하여 카바레티스트는 관객을 단순히 공연에 와서 앉아 머무는 자(bleibender Seyn)30)로 두기보다는 움직이는 자(bewegender Seyn)로 차츰 변화시켜 나갔다. 이 움직임은 정신의 적극적 개입을 실현하는 육체적 반향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의 적극적 개입은 관객을 더 이상 제3자
로서의(als Fremd) 방관자가 아닌 직접 실천을 하는 자로서 자리매김 하였다. 이를 통해 공연자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관객도 이에 맞추어 스스로 함께 움직이며 변화하도록 이끌어냈다. 카바레트의 이와 같은 태도는 관객의 정신세계에 새로운 부정성을 제공하여 스스로를 한층 더 깊이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아울러 이와 같은 접근은 철학이 지향하는 가치관의 치유(Wiederherstellung der Auffassung)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부정성을 통해 관
객들의 정신세계를 깨어나게 하는 것이 바로 카바레트의 소외성의 본질이기도 하다. 카바레트의 소외성 역시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을 즉자 상태에서 대자 상태로 전환하도록 만들며, 이를 통해 정신이 새롭게 생동하도록 만든다. 이런 소외성은 인간의 정신으로 하여금 일상 가운데 나약한 채로 머물러 안주하게 하지 않고 자신의 참 존재를 실현하도록 투쟁으로 인도한다. 이렇게 해서 정신은 자신의 나약함을 떨쳐버리고 자신의 자리를 새롭게 세우는 생동하는 정신(lebhaftiges Geist)으로 거듭난다. 이런 소외성은 관객의 정신이 스스로를 끊임없이부정하는 운동을 통해 참된 자유로 향하도록 인도한다.

 물론 예술작품들은 사상이나 개념이 아니라, 개념이 스스로에게서 발전해 감각적인 존재로 소외(疏外, Entfremdung)되어 나아가는 것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유하는 정신의 위력은 이를테면 원래 사   유라는 자신의 고유한 형식(形式, Form) 속에서 자기 자신을 파악할뿐더러, 또 감정이나감성으로 자신을 외화(外化, Entäußerung)시키는 가운데서도 자기를 재인식하고, 자신의 타자(他者)속에서(in seinem  Anderen) 낯설어진 것(소외)을 사상으로 바꿔 자신에게 회귀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개념적으로 인식하는 데 있다.31)

헤겔의 부정성 부분에서 다시 고찰될 부분이지만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며 내적 감정의 동요(動搖)를 통해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그래서 창작을 기반으로 아방가르드(Avant-garde)를 추구하는 예술가는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자신의 부정성을 지속시켜 나아가려고하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예술가, 즉 창작자의 원동력은 바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부정성이며, 이부정성은 자신의 외화방식(Darstellendes Mittel), 즉 작품(Gestaltendes Mittel od.-e Werke)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구축되는 과정을 거친다.32) 한편으로 예술가는 본능적으로 관객에게 자신의 즉자를 확인받고자 하는 인정투쟁(Der Kampf um Anerkennung)의 욕망을 지닌다. 그러나 단순히 자아에 대한 사회적 평가의 욕망, 즉 사회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욕망에 얽매인 예술가는 더 이상 자신 즉자를 확인하지 못한다. 이렇게 자아를 상실한 채 욕망에만 집착하는, 그래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예술가의 상황은 그가 남의 평가에만 의존할 경우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예술가가 이런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욕망의 사슬을 끊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려는 몸부림을 쳐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주체 자신이 절대적인 분열 속에 몸담고 있는 스스로를 알아차림으로써 진리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33) 이처럼 진정한 자아는 정신의 분열 또는 찢어짐34)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래서 예술가는 순수한 창작품으로서의 자아를 찾아가는 몸부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평가자인 관객의 위치로 자리를 옮겨놓기도 한다.35) 바로 이 과정에서 관객도 예술가의 공연을 관람(觀覽)하고 있지만 예술가라는 존재를 통해서 정신의 자기운동 과정에 자연스럽게 들어선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관객과 예술가는 서로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로 자연스럽게 남겨진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서로를 매개하는 가운데 존재하게 하는 부정성의 개념이 자리를 잡는다. 이처럼 카바레트 공연에서 나타나는 긍정적 부정성은 예술가와 관객 모두에게 각자가 자신을 외화함(Entäußerung)을 통해 소외
(Entfremdung)에 직면하게 하는 시발점의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