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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2               <사일런스> 신의 침묵과 인간의 박해 속 신앙에 대하여                애니메이터 안주영 감독

 

                                   

영화 <사일런스>에는 종교의 박해 속에서 순교와 배교에 처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배교의 선택을 강요받기도 하고 또 그다지 이름이 주는 숭고함과는 거리가 먼 처참한 모습으로 순교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타인의 순교가 경우에 따라서는 배교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영화 <사일런스>에는 배교의 동기가 타인의 안전을 위한 것이거나 타인의 순교를 막고자 하는 경우가 꽤 있어서 키치지로는 가족의 순교로 괴로워하며 배교했고 주인공 로드리게스 신부 역시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 때문에 순교당할 위험에 처하자 결국 배교하고 말았다.

영화 속 키치지로에게서 유다를 연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배교와 고해성사를 마치 하나의 짝처럼 몇 번씩

되풀이하는 것을 보며 관객은 웃음이 나는 순간이 있을지 모르나 키지치로가 신앙에 대해 진지하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키치지로는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캐릭터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행동한다. 그는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으며 끈덕지게 고해성사를 봐야한다고 생각할 만큼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현세의 욕망 또한 큰 인물이다. 그것으로 그의 배교와 고해성사가 끊임없이 도돌이표가 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 도돌이표가 키치지로 몸에 지닌 성물발견으로 순교로 끝맺는 것을 보는 동안에도

우리는 의문을 품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회개 시키러 왔다.”는 성경에 맞아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은 유다에서 은 300냥에

로드리게스 신부를 팔아 넘겼지만 끊임없이 죄 사함을 청하고 순교한 키치지로 캐릭터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는 많이 비틀어 놓은 인물이다.

                                                                                     반면 영화 <사일런스>의 주인공 로드리게스 신부는 인간의 고통에 침묵하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문                                                                                      제로 번민하는 인물이다. 그에게서는 예수 수난의 모습이 종종 보여 지지만 동시에 이야기 속에서 구조                                                                                      적으로는 그의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의 일본에서의 선교에 관한 편지 내레이션부터 배교 후 일본여인                                                                                        과의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뒤따른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가루페 신부와 더불어 일본에 파견된 마                                                                                      지막 신부라는 사명감으로 자신의 죽음이 일본에서의 교회의 죽음이라 여기지만 그는 끝내 배교하고                                                                                        만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늘 가장 확신에 찬 순간에 큰 시험에 빠지게 되는데 고토의 선교가 성공적이                                                                                        어서 한껏 고무되어 돌아오자마자 바로 지사마(이치조)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고 결국 마을의 독                                                                                      실한 신자들이 십자가 위에서 파도에 익사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나가사키 옥에서 확신에 차 안락                                                                                      한 모습으로 신자들을 독려하며 지내면서 ‘당신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세 번에 걸쳐 다짐하는 대사를                                                                                        듣고 있노라면 관객은 닭 울기 전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연상되어 불길한 마음이 드는데 실제로 나가                                                                                      사키 옥의 결말은 배교로 이어졌다. 심지어 그는 개울에 비친 자신이 예수의 성화 그림에 겹쳐지는 환                                                                                       시의 순간에 체포당한다. 그가 하는 기도는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처럼 하느님의 깊은 침묵 중에 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다며 신자들의 죽음 앞에서 무력함에 괴로워한다. 신자들의 믿음으로 생겼던 확신이 자신의 순교조차 허락받지 못한 상황에 내몰리고 신자들의 인질극으로 변질되자 로드리게스 신부는 극심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다. 그는 일본 막부의 전략적인 악의에 무력하다. 그가 언뜻 예수님의 수난을 뒤따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는 부활과 배교로 확연하게 갈리고 만다.

“죄 없는 인간은 왜 고통 받는가? 하느님은 왜 이런 시험을 주시는가?”라는 질문을 이 영화 안에서 로드리게스 신부는 반복해서 한다. 이 질문에 대해 ‘왜’에 대한 답변을 인간은 여러 가지로 추측해 보지만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단지 ‘고통이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로드리게스 신부의 배교의 순간 들리는 음성이 했던 “지금 너와 함께 있단다.”라는 말이 그 고통의 순간에 유일한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로드리게스 신부는 배교의 순간 음성을 듣는데 그것은 의외로 어서 배교를 하라는 권유의 음성이었다. “어서 하거라. 괜찮다. 날 밟거라. 난 너의 고통을 잘 안다. (후략)...”이 음성에 따라 예수님 모습이 새겨진 동판을 밟는 배교행위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음성에 따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순교의 과정이 아니라 로드리게스 신부 개인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하느님의 자비 속의 배교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 장면은 로드리게스 신부는 영화 내내 하느님의 침묵에 괴로워했지만 실제로 하느님은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는 일종의 증거일 수 있다. 하느님을 부르는 인간의 기대와 하느님께서 보여주는 섭리가 다르기에 인간이 침묵으로 여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면 한 때 예수님의 성화를 떠올리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먹이라”한 말씀에

감화를 받았던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이제 남은 양은 없어 보인다. 유일하게 그를 맴돌며 마지막 신부라며

고해성사를 청하던 키치지로마저 성물이 발견되어 죽임을 당하자 그는 모든 점에서 패배한 듯 보였다.

그는 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했으며 하느님 이름을 부르는 것도 기도도 그쳤다. 그의 장례식은 불교식

이며 법명까지 받는다. 그가 신앙과 관련된 신념을 모두 버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교자들을 각인시키

기 위해 했던 정기적 배교행위에서 오히려 덤덤해 보이는 로드리게스에 비해 괴로움이 묻어났던 그의

일본인 아내의 얼굴이나 그의 장례식에서 순교한, 과거 그의 신자였던 모키치가 준 십자가를 그 아내가

그의 손안에 들려 준 점을 보면 그의 아내만은 알 수 있었던 그의 신앙심 혹은 그가 뿌린 선교의 열매로 남겨진 그의 아내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애니메이터 안주영감독 

경북대 사회교육학과 졸업,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연출 전공 졸업, <선잠> 애니메이션을 부천국제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 상영,

<쫑> 애니메이션을 인디포럼 여성인권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에 상영한 바 있다. TV비평 공모에 당선, 매거진t (2007.10~2008.6)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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