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4              <미스 슬로운>  자신을 피고로 한 법정에서 재판장이 되다.           애니메이터 안주영 감독


법의 체계를 바라보는 우리는 갈증을 느낄 때가 많다. 명백한 사실에도 왜 이렇게 법은 자기 역할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가.

모두의 상식적 판단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무시될 수 있는가. 법은 물론 사회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전선에 있는 바리게이트 역할을 하기도 하겠으나 종종 우리는 이권다툼의 격전지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 이권이라는 것은 몹시도 몹시도 얼굴이 두껍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법체계 안에서 인권이 아니라 이권을 지키고자 분투하는 사람들의 삶의 인식은 너무 많은 것은 용인 받는다.

 

사람들의 상식적 판단이 명백하더라도 돈은 이 판단을 교란시키고 공격을 하는데 최선을 다해왔다. 사실 우리는 어느 정도 포기하는 심정으로 법집행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지는 불행 속에 있다. 법은 악의적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친 이에게 실제적 물리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지만 그 가해자가 권력과 부를 가졌다면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은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뼛속까지 깊이 체험하고 있다.

 

그러한 가해자의 도덕과 윤리를 논하는 것은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이권에 비한다면 도덕과 윤리는 웃기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상처받은 피해자가 도덕과 윤리를 꺼내드는 것은 익숙하지만 가해자는 마치 도덕과 윤리의 세상 밖의 존재처럼 여겨진다. 그들의 도덕과 윤리야말로 문제해결을 위한 지름길이 아닌가. 이러한 분노는 순진한 것이라고 치부된다. ‘그들은 이미 돈을 쥐고 머리 꼭대기에서 놀 것이다’라는 것이 법과 관련한 우리의 자포자기한 생각이다. 한편으로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는 아니다. 단순하게 이권에만 머리를 들이박고 있는 존재라 하더라도 그에게 일어나고 있는 혹은 앞으로 일어날 내면의 지도를 미리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인간 상호간에 도덕적 윤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판단 능력의 한계점으로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오직 외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누구라도 나빠지던 좋아지던 늘 내적 변화 속에 있다. 이것을 순진한 믿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삶이 가진 실제 무게를 간과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영화 <미스 슬로운>은 미국의 총기와 관련한 상식적이지 못한 법적 공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법의 사회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전선으로서의 바리게이트의 역할이 이권다툼의 격전지의 볼모로 잡혀 있는 극적인 지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주인공 미스 슬로운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다. 법과 권력체계를 이용해서 돈을 챙기는 로비스트다. 단, 자신이 원하는 일만 맡는 로비스트다. 이 사실은 도덕과 윤리가 작동하고 있는 인물임을 암시해 준다.

 

총기 이권의 격전지에 들어가게 된 이 로비스트는 본인에게 작동하는 도덕과 윤리로 인해 빠져나오려다가 총기로 얻는 이권을 유지하려는 세력 반대편에 가담하게 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의 일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삶은 이미 커리어만 남겨 놓은 채 나머지 영역은 빈사 상태로 삶의 불균형이 심각한 지경에 있었고 선택적으로 일을 맡는 도덕과 윤리가 작동하고 있었다고 해서 커리어를 쌓기 위해 공격적으로 움직이던 그의 일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변함없이 로비스트이나 그가 몸담은 직장의 성격이 변했지만 그것이 그의 실제 삶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주위 사람에 대한 그의 태도는 자신의 일의 성취-영화에서는 신념이라는 표현을 썼지만-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활용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방식이었다.

 

타인의 존중이 심각하게 결여된 상태였던 셈이다. 결국 이기기 위해 미스 슬로운 자신이 말한 것처럼 선을 넘어 버린다. 동료 중 총기사건을 겪고 총기 규제에 가담했으나 자신의 행동들이 감정적인 것에서 나왔다고 판단 받는 것을 염려해서 숨겨왔던 이를 극적으로 드러내 언론플레이에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미스 슬로운의 계략으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언론의 전면에 나서게 된 동료가 총기의 위협에 노출된 사건이 발생하고 총기소지자에게 구출됨으로써 승승장구하던 상황은 반전을 맞는다. 미스 슬로운은 위험에 빠졌던 동료의 비난과 합리적이고 선량한 총기 소지자가 이웃의 생명을 구했다는 상대편 언론 공략에 몰리게 된 것이다. 이 영화가 수많은 법정 영화 속에서 신선하게 다가오는 점이라면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주인공이 빠져나오는 법적 공방의 방식이다. 미스 슬로운의 결말은 단지 생각지 못한 카드를 숨겨놓아 상대편을 곤경에 몰아넣은 반전으로 끝맺지 않는다.

 

결말 속에는 미스 슬로운이 자신에 대한 도덕적 평가에 따라 스스로에게 법적 책임을 지우는, 사적으로 도덕 윤리적 평가를 먼저 한 후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법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속죄한 특이한 케이스를 보게 된다. 미스 슬로운은 감옥에 걸어 들어갔으나 그는 분명히 법적 공방을 통해 자신의 삶의 위기 속에서는 빠져 나왔다. 그가 도덕적 윤리적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었다.

 

애니메이터 안주영감독 

경북대 사회교육학과 졸업,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연출 전공 졸업, <선잠> 애니메이션을 부천국제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 상영,

<쫑> 애니메이션을 인디포럼 여성인권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에 상영한 바 있다. TV비평 공모에 당선, 매거진t (2007.10~2008.6)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