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트(Kabarett)의 소외성과 치유적 가능성2    

- 브레히트(B. Brecht)와 헤겔(G. W. F. Hegel)을 중심으로 -                                           

​카바레티스트 김주권

3. 브레히트의 소외성


소외성(Verfremdung)은 일반적으로 20세기 독일의 카바레트 극작가이며 연극 연출가인 브레히트의 서사기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카바레트에서 시도된 공연방해에서 브레히트 스스로가 힌트를 얻은 방식이다. 브레히트는 자신이 카바레트 극장에서 경험한 내용, 즉 담배를 피우면서 자유롭고도 왁자지껄하게 펼쳐지는 공연장의 모습을 공연자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매개물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소외성으로 개념화하였다. 이후 소외성 개념이 브레히트를 통해 연극으로 넘어오게 되었으며 20세기 연극의 표현방식으로 구체화 되었다. 브레히트의 소외성은 이전의 연극(정극)에 나타나는 극의 진행과정에서 탈피하여 현실에서 보이는 친숙한 주변을 생소하게 보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이 소외성은 극중 등장인물과 관객 사이의 감정적 교류를 방해하면서, 심지어 극중 인물에 대해서 반감을 갖게 하여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가능하도록 한다.
브레히트는 소외성을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사건들과 관련하여 충격적인 것,즉 설명을 요하는, 그래서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없는 그 무엇을 제시하는 수법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소외성은 무대의 공연자가 마치 관객 중의 하나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이 소외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 자신이 직접 공연 무대의 사건에 대해 스스로 연구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갖게 하여 자신의 부정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극이론에 입각한 종전의 공연은 관객들이 무대 밖의 객체로 머물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관람 방식이었다.36) 그러나 브레히트는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관람 방식을 거부하고 카바레트에서 도입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방식을 추구하였는데, 그는 이것을 소외성(Verfremdung)으로 개념화하였다. 그는 이 소외성에 대해서 다음과 규정하였다.

 

 소외성의 순수하고 심오한 효과적 사용은 사회가 자신의 상태를 역사적으로 그리고 개선 가능한 것으로 간주함을 전제로 한다. 순수한 소외성은 투쟁적 성격을 갖는다.37)
 

이처럼 브레히트는 이 소외성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자기발전 단계에 접목시켰다. 그는 소외의 방식으로 공연자의 객체화를 적극 추구하였고, 그 가운데 부정성을 가미하여 관객이 환상적으로 감정이입을 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관객이 냉철한 이성과 비판력으로 공연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는 반(反)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연기법의 일환으로 대사 가운데 주석달기, 관객에게 말 걸기, 번호 붙이기, 노래삽입 등을 시도하였다.
브레히트는 자신의 공연 <한밤의 북소리>라는 카바레트에 직접 출연해서 자신의 곡을  부르면서 소외성을 시도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평론가 리온 포이히트방거38)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그러고는 한가운데 서서 끔찍할 정도로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밴조(Banjo) 반주에 맞춰 너무나 뻔뻔스럽게 노래를 불렀는데, 억양도 영락없는 바이에른 사투리였다. 그래도 큰 도시의 관점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루는 방식은 전에 없었던 신선함을 불러일으켰다. 가사는 가벼우면서도 심통맞고 뻔뻔했으며, 수많은 인물이 두서없이 들어차 있었다.39)

 

브레히트는 카바레트 무대에 대하여 1924년부터 ‘서사-담배-극장’ 등의 세 가지 주제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관람객들이 카바레트 극장에 부담 없이 찾아와서 주눅이 들지 않은 상태로 공연을 보며 공연 후에 토론에 참여하는 모습을 자주 상기했고,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브레히트는 자신의 눈으로 본 관객들의 행동과 공간의 상호연관성, 즉 서사(카바레트 공연 객체화)-담배(공연을 바라보는 관객의 자유로움 주체에 대한 부정성)-극장(공간적 객관화)에 중점을 두게 된다.
브레히트에게 영향을 끼쳤던 대표적인 카바레티스트로는 쿠르트 투홀스키(KurtTucholsky)40)와 발터 메링(Walter Mehring),41) 그리고 에밀 에리히 캐스트너(Emil Erich Kästner)42) 등이 있는데, 이들은 브레히트와 카바레트 무대에서 함께 공연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예술을 통해 사회와 국가에 대한 비평적 접근(satirischen  Kritik)을 시도했던 부분들로부터 브레히트는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영향의 결과로는 ‘소외성 효과’를 개념적으로 정립할 수 있었다. 이파냐네시가 밝혔듯이, 브레히트는 쿠르트 바일(Kurt Weill)43)과 함께 풍자적인 노래에 감상적인 부분을 가미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풍자의 요소가 후일 브레히트를 통해 극 진행 가운데 발생하는 소외성 효과로 진행되었으며, 그의 특유의 연극대본으로 발전하는 데 이바지했다. 특히, 본인도 밝혔듯이, 브레히트는 대중의 언어를 차용한카바레트 샹송을 모델로 삼았다. 카바레트 샹송에는 단순한 몸짓을 넘어 태도를 담아내는 게스투스(Gestus)44)의 본질적 특징이 담겨있다.
카바레트에서 활동하던 브레히트는 마르크스식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 유물론자로 살았다. 그래서 그의 이론의 중심에는 항상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자리하고 있다. 정통 카바레트가 헤겔의 변증법을 기반으로 부정성을 활용하였다면, 브레히트는 유물론적 역사 투쟁의 방식을 연극에 대입해서 소외성 효과를 내었다. 그가 제시한 이론은 다음과 같다.

 

 변증법과 생소화
 1) 이해를 위한 생소화(이해-불이해-이해), 부정의 부정
 2) 이해될 때까지 이해 안 되는 것의 누적(양적인 것에서 질적인 것으로의 변화)
 3) 일반성 속의 특수성(독특하고 일회적이며 그러면서도 전형적인 사건)
 4) 전개의 계기 (한 감정이 그 반대되는 감정으로 변화되는 것, 비판과 감정이입이 동시에 이루어짐)
 5) 모순 (이런 상황 속의 이런 사람! 이런 행위의 이런 결과!)
 6) 한 가지 사실을 다른 사실을 통해 이해하는 것 (처음에 그 의미가 당연하게 파악되던 한 장면이
    다른 장면과 결부되어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아내는 것)
 7) 도약 (자연스러운 도약, 도약이 있는 서사적 전개)
 8) 대립의 통일성 (합일성 안에서 대립을 찾는다. 예를 들어 [어머니]에서 모자간의 경우 외적으로는
    합일되어 있지만, 내적으로는 임금 때문에 서로 싸운다)
 9) 학문의 실용화 (이론과 실제의 일치)45)

 

브레히트의 이론에 따르면 무대는 철저하게 변증법적 유물론의 구조로 이루어진다.1)에 나타난 구조는 헤겔의 변증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며, 이 구조에서 이해-불이해-이해는 헤겔이 말한 즉자가 부정성을 통해서 대자화되는 과정을 아주 친숙하게 정리하고 있다. 특히, 본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은 불이해의 부분이다. 이 불이해는 헤겔의 부정성과 일치를 이루는데, 이 불이해는 극복을 위한 불이해를 의미한다. 헤겔의
실체에 대한 부정성 논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실체가 곧 주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실체에 순수하고도 단순한 부정성이 작용하면서 이로 인하
여 단일한 것이 분열됨을 뜻한다.46)

4. 헤겔에 나타난 소외 및 이로니48)

앞에서 브레히트가 주창한 소외성 효과는 다른 표현으로 ‘이로니를 매개로 한 공연예술’이라고 말해질 수 있으며, 여기에서 나타난 이로니는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단순한 혼돈을 의미하지 않는다. 헤겔의 미학강의에서 현재화된 이로니를 관객들은 공연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 카바레트 공연에서 이로니는 단순히 관객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이로니라는 매개를 통하여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의
장(場)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마련된 장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즉자를 자연스럽게 대상화시켜 나간다.

 

 생동하는 실체야말로 참으로 주체적인, 다시 말하면 참으로 현실적인 존재이다. 그것은 실체가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운동이며 나아가서는 스스로 자기를 타자화하는 가운데 자기와의 매개를 행하기 때문이다.  실체가 곧 주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실체에 순수하고도 단순한 부정성이 작용하면서 바로 이로 인하여 단일한 것이 분열됨을 뜻한다.49)


생동하는 보편자인 실체는 즉자적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순수하면서도긍정적인 부정성을 향해 나아간다. 관객은 자신의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부정성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순, 즉 이로니(Ironie)를 인정하는 과정을 겪게된다. 이 긍정적 부정성은 단순한 자기 부정이 아니며, 바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인 자기 자신으로부터 지양성을 지닌 즉자가 된다. 이 즉자는 외향적 자신을 보호하기위해서 자신의 부정적 부정을 부정하는 가운데 순수한 부정을 통해서 긍정적 부정을 지닌 실체가 되어간다.
자신을 소외시키지 못하는 관계에서는 더 이상의 지향을 내포한 부정성이 자리 잡지 못하고 단순 부정에 머물게 되며, 이러한 부정성이 가지는 정체(停滯)를 극복하기 위하여 개념은 새로운 출발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출발은 기존 개념에 대한 진보를 기초로 하며 개념의 진보는 더욱 더 자신을 소외시킴으로써 자신의 참 존재에 다가간다. 자신의 소외가 자신의 발전의 기초가 되는 개념의 활동은 생동력이라는 입
장에서 운동하는 개념으로 정립될 수 있다.

 

 개념은 보편자로서 한편으로 자신을 통해서 피규정성이자 특수함으로 자신을 부정(否定)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편자를 부정하는 특수성을 다시 지양(止揚, aufheben)한다. 왜냐하면 보편자는 보편자 자신의 특수한 측면들에 지나지 않는 그 특수한 것 안에서 절대적인 타자(他者)로 오지 않고, 특수한 것 안에서 보편자인 자신과 다시 통일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념은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가운데 무한한 부정(否定, Negation)으로 머무는데, 이는 타자에 대립되는 부정이 아니라 단지 자신과 관계하는 긍정적인 통일 속에 머무르는 자기규정(Selbstbestimmung)이다.50)


부정은 부정을 극복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부분으로 지양된다. 부정은 단순한 언어적 부정이 아닌 움직이는 긍정으로서의 부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즉, 부정은 타자에 대립되는 부정이 아니라 보편자로서의 부정으로 개념화되는 방향성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이루어진 개념의 부정은 철저히 자신을 바라보는, 즉 자신을 미화시키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자기규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자기규정 역시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자기규정은 카바레트에 나타난 관객과 예술가의 통일성을 이룩하는 기초로 대변된다. “물론 이로니(Ironie)51) 속에서도 그처럼 절대적인 부정성이 들어 있어서, 주체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피규정성들과 일면성을 제거하면서 스스로와 관계한다.”52)는 헤겔의 언급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로니는 자신을 부정하는 방법중의 하나로 이로니를 통해서 즉자는 대자를 만나기 위한 개념의 투쟁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로니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찾는 진정한 즉자를 만나기를 희망하게 된다. 개념의 헛된 진지함은 어느새 자신의 극복 과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을 한다. 이러한 개념의 헛된 또는 가식된 진지함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로니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조건이 된다. 그래서 이로니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즉자가 이로니의 형태로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로니는 다른 모습의 부정성이기도 하다.

 이로니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부정성(否定性, Negativität der Ironie)이 드러나는 가장 가까운 형태를 보면, 한편 사실적이고 인륜적이며 함축적인 모든 것이 공허해지고 모든 객관적인 것이나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지던 것이 무가치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만약 자아가 이 입장에 서게 되면그에게는 자기의 주관성을 제외한 모든 것은 무가치하고 공허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주관성은 스스로 텅 비고 공허하게 되어버린다. 다른 한편으로, 자아는 스스로 자족(自足)해야 하는데도 역시 만족하지 못하며 스스로 불충분하게 될 수밖에 없다.53)
 

이로니의 역할에서 부정성이 드러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자기반성을 지닌 운동성으로 이어진다. 자기반성은 순수한 부정성의 다른 모습이다. 이 순수한 부정에는 자신의 실존을 진정으로 극복하려는 개념적 운동이 포함되어 있다. 순수한 부정은 이로니라 는 형식을 통해 다른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상대적으로 적대시되던 단순한 부정이라는 의미를 바꾸어 놓게 된다. 그러나 순수한 자기부정이 어떤 압력에 의해서 강제로 규정된 개념으로서만 개념화 되어버린다면, 순수한 부정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순수한 부정은 개념의 충돌을 통한 자기부정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자기부정은 자기규정의 다른 모습이다. 자기부정이 전통과 관습에 얽매여있는 자기규정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정신으로서의 자기부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부정은 이로니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지양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또한 이로니는 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의 특수한 개성을 극대화시키면서 환경이나 경험에 의해서 고착화된 자아를 벗어나도록 유도한다.54) 인간은 자신의 경험에 순진할 정도로 순종적이다. 여기에서의 순종적인 모습이란 외관상으로는 평온해보이지만 자기학대, 즉 피해의식에 근거하며, 이러한 피해의식으로 인해 자신을 지키려하는 잘못된 보호본능이 자신을 얽어매는 올무가 되어버린다. 이 억압에서 정신은 자연스럽게 자유를 추구하며, 이 정신은 잘못된 경험, 그리고 잘못된 것이라 여겨왔던 주위의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 속에 이로니를 자신의 대변인으로 드러내게 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자유로운 정신은 어느새 습관적으로 정형화된 개념을 극복하게 된다.